이창동 감독의 영화에는 명확한 악인도, 완벽한 선인도 드뭅니다.
대신 상처받은 사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이해하고 싶지만 끝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감독은 누가 옳은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관객에게 질문을 남깁니다.
“당신이라면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초록물고기>에서 <버닝>까지 이어져온 이 질문은 2026년 신작 <가능한 사랑>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은 가능한가?”
영화가 끝났는데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 묘한 느낌이 남습니다.
재미있었다고 간단히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재미없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영화가 끝난 다음부터 생각이 시작됩니다.
김영호는 왜 그렇게 변했을까?
신애가 느낀 분노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종수의 의심은 사실이었을까?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창동 영화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관객에게 답을 주기보다 쉽게 답하지 못하게 만드는 감독입니다.
1. 이창동 영화에는 완벽한 선인과 악인이 없다
대중적인 영화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한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해야 하는지,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지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창동 영화는 다릅니다.
<박하사탕>의 김영호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현재의 김영호만 보면 거칠고 폭력적이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돌립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그 사람이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에서
“저 사람은 왜 저런 사람이 되었을까?”
이 두 질문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창동 영화는 두 번째 질문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2. 개인의 상처 뒤에는 언제나 사회가 있다
이창동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개인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초록물고기>에는 급격하게 변해가는 도시와 가족이 있고, <박하사탕>에는 한국 현대사가 있습니다.
<오아시스>에는 장애와 사회적 편견이 있고, <버닝>에는 청년 세대와 계급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사회문제를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줍니다.
| 작품 |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 | 그 뒤에 있는 문제 |
|---|---|---|
| 초록물고기 | 한 청년의 비극 | 산업화·도시화·가족의 해체 |
| 박하사탕 | 한 남자의 몰락 | 한국 현대사의 폭력 |
| 오아시스 | 두 사람의 사랑 | 사회적 편견과 배제 |
| 밀양 | 한 여성의 상실 | 종교·용서·구원의 문제 |
| 시 | 한 노인의 시 쓰기 | 폭력·책임·도덕적 무관심 |
| 버닝 | 세 청년의 미스터리 | 계급·불평등·청년의 분노 |
| 가능한 사랑 | 두 부부의 만남 | 노동·자본·계급·욕망·사랑 |
그래서 이창동 영화에서는 개인의 불행을 개인의 잘못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3.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보다 사건 이후다
이창동 영화에는 충격적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감독의 관심은 사건 자체보다 그 일이 지나간 뒤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가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상처는 사건이 끝났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기억과 행동, 가족관계와 삶의 태도 속에 남습니다.
<박하사탕>이 대표적입니다.
영화는 한 인간이 무너진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찾아갑니다.
<밀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극적인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 이후 신애가 살아가는 과정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관점은 <가능한 사랑>에서도 이어집니다.
4. ‘가능한 사랑’도 파업 자체보다 그 이후를 바라본다
<가능한 사랑>의 출발점에는 대규모 정리해고와 파업 진압이라는 사회적 사건이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감독의 글에서 대규모 해고와 파업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을 당시 영화로 응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실제 노동자의 고통을 극영화로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고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 호석은 단순히 ‘해고 노동자’라는 사회적 기호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사건을 겪은 뒤에도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미옥이 있습니다.
그들 앞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예지와 부유한 남편 상우가 나타납니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공식 설정에서도 두 부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으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만나면서 서로의 차이와 숨겨진 욕망을 마주하게 됩니다.
5. 이창동 영화에는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이 있다
<가능한 사랑>에서 특히 흥미로운 설정이 하나 있습니다.
조여정이 연기하는 예지는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즉 호석과 미옥의 삶을 카메라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설정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영화 속 예지만 호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극장에 앉아 있는 우리 역시 호석과 미옥의 삶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순간 관객 역시 영화 속 다큐멘터리 감독과 비슷한 위치에 놓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본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일까?
카메라에 담는 것은 공감일까, 관찰일까?
경제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노동자의 고통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저는 이 지점이 <가능한 사랑>에서 특히 주목해볼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6. 이창동은 관객을 편안한 자리에서 끌어낸다
이창동 영화를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관객이 안전한 위치에서 등장인물을 쉽게 평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밀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용서는 좋은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용서하기도 전에 가해자가 신에게 이미 용서받았다고 믿는다면 어떨까요?
그 순간 ‘용서는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명제는 흔들립니다.
<시>도 비슷합니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마음과 외면하고 싶은 끔찍한 현실을 한 사람 안에 동시에 놓습니다.
관객은 어느 한쪽만 선택하기 어려워집니다.
이창동 영화의 불편함은 잔혹한 장면 때문이라기보다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7. ‘버닝’에서는 계급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섭다
<버닝>에 이르면 이창동 감독이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과거 영화에서는 사회적 폭력이나 소외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면 <버닝>의 계급 문제는 훨씬 모호합니다.
벤은 여유롭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서 돈을 버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반면 종수에게는 미래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 간극은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계급의 문제는 <가능한 사랑>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해고 노동자 부부와 상대적으로 부유한 부부가 직접 만나기 때문입니다.
8. 그런데 왜 이번 영화의 제목은 ‘가능한 사랑’일까?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노동, 자본, 해고, 계급의 차이를 다루는 영화의 제목이 왜 <가능한 사랑>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감독 자신이 중요한 단서를 남겼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공식 자료에서 노동과 자본을 비롯한 여러 힘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인간은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욕망 자체가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취지로 작품의 출발점을 설명했습니다.
즉 이 영화에서 사랑은 단순한 남녀 관계만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부부 사이의 사랑
↓
다른 계급의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
↓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려는 시도
↓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욕망
↓
결국 다른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
9. 이창동 영화의 핵심 단어 6개
지금까지의 작품을 관통하는 단어를 굳이 여섯 개만 고른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습니다.
| 키워드 | 이창동 영화에서의 의미 | 대표 작품 |
|---|---|---|
| 상처 | 과거가 현재의 인간에게 남긴 흔적 | 박하사탕 |
| 소외 | 사회 밖으로 밀려난 사람 | 오아시스 |
| 구원 | 인간은 다른 인간을 구할 수 있는가 | 밀양 |
| 죄책감 |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떤 책임을 지는가 | 시 |
| 계급 | 같은 사회에 살지만 서로 다른 세계 | 버닝 |
| 사랑 | 차이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가능성 | 가능한 사랑 |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이 여섯 단어가 서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소외되고, 소외된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면 죄책감의 문제가 생깁니다.
그 사람들 사이에는 계급과 환경이라는 거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
10.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영화세계의 종착점일까?
물론 아직 국내 정식 개봉 전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랑>을 이창동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단정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이릅니다.
하지만 감독이 직접 밝힌 제작 의도와 공개된 줄거리를 기준으로 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하나 보입니다.
과거의 질문들이 이번 작품에서 다시 만납니다.
| 과거 작품의 질문 | 가능한 사랑과의 연결 |
|---|---|
| 사회는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해고와 파업 이후의 호석 |
| 소외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두 부부 |
|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 노동자를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
| 계급의 간극을 넘어설 수 있는가? | 호석·미옥과 상우·예지의 만남 |
| 결국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 | 가능한 사랑 |
그래서 저는 <가능한 사랑>을 단순히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라고만 보는 것보다 지난 30년간 그의 영화가 던져온 질문을 다시 모아보는 작품으로 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이창동 영화가 보고 나면 오래 남는 진짜 이유
좋은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놀라운 반전이나 화려한 영상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은 오래 남습니다.
특히 정답을 찾지 못한 질문은 더 오래 남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바로 그 질문을 관객에게 넘겨주는 감독입니다.
오아시스 - 누가 사랑할 자격을 결정하는가?
밀양 -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가?
시 - 타인의 고통 앞에서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는가?
버닝 -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가능한 사랑 -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는가?
가능한 사랑을 볼 때 주목하고 싶은 5가지
9월 23일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면 저는 다음 다섯 가지를 유심히 보고 싶습니다.
- 호석과 미옥의 상처가 현재의 부부관계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
- 예지는 정말 호석과 미옥을 이해하는가, 아니면 이해한다고 믿는가
- 두 부부의 경제적 차이가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카메라로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행위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 마지막에 이창동 감독이 말하는 ‘가능한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다섯 가지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단순한 네 남녀의 관계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작품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FAQ
개인의 삶과 사회적 환경을 함께 바라보고, 상처·소외·죄책감·계급·구원 같은 문제를 통해 인간을 쉽게 선악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건의 의미나 인물의 행동을 감독이 직접 설명하지 않고 관객이 판단하도록 남겨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본 뒤 해석이 서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이라는 서로 다른 두 부부가 만나면서 삶의 차이와 숨겨진 욕망을 마주하는 작품입니다.
2026년 9월 23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며,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공개될 예정입니다.
마무리|어쩌면 이창동은 30년 동안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차례로 돌아보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30년 동안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질문을 서로 다른 인물에게 계속 던져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회와 역사는 인간에게 상처를 줍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계급과 환경은 사람들을 서로 다른 세계에 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용서하려 하고, 이해하려 하고, 때로는 사랑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이창동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차이와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가능한가?
아마 그래서 제목이 <사랑>이 아니라 <가능한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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