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소설가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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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각본가·조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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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영화감독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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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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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문화관광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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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감독으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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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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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가능한 사랑>
소설가가 영화감독이 된 것만으로도 흔치 않은데, 영화감독이 장관이 되었다가 다시 영화 현장으로 돌아온 경우는 더욱 드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이창동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길을 걸어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을까요?
이창동을 이해하려면 영화보다 먼저 ‘소설’을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은 이창동을 <박하사탕>, <밀양>, <버닝>을 만든 영화감독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의 출발점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문학이었습니다.
칸국제영화제 공식 감독 프로필은 이창동이 1983년 소설가로 데뷔한 뒤 영화계에 들어왔다고 소개합니다.
이 사실은 이창동 영화를 이해할 때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의 영화에는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조금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기보다 한 인물을 오래 바라봅니다.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도 질문이 남습니다.
이런 특징은 그의 출발점이 소설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생각해보면 더욱 흥미롭게 보입니다.
교사였던 소설가, 그리고 뒤늦게 시작한 영화
이창동의 경력이 독특한 또 하나의 이유는 처음부터 영화감독을 목표로 영화계에 들어간 인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고 교사 생활을 거쳐 문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3년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뒤 영화와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칸국제영화제 공식 약력에 따르면 이창동은 <그 섬에 가고 싶다>에 각본가와 조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영화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즉 처음부터 카메라 뒤에서 영화를 연출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서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 조금씩 이동한 것입니다.
소설과 영화, 무엇이 달랐을까?
소설가는 독자의 머릿속에 세계를 만듭니다.
영화감독은 화면과 소리, 배우의 얼굴과 침묵을 통해 세계를 보여줍니다.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이창동에게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사람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 칸영화제에서 <시>를 소개하면서 그는 영화와 시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칸 공식 기록에는 이창동 감독이 시를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대신 노래하는 행위에 비유하면서,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 역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 이야기하는 것과 연결해 설명한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이 발언은 그의 영화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사람의 내면을 언어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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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이창동
사람의 얼굴과 행동, 침묵을 카메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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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심에는 계속 ‘사람’이 있다.
1990년대, 마침내 영화감독이 되다
이창동이 장편영화 감독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은 <초록물고기>입니다.
한석규가 막동을 연기한 이 영화는 범죄영화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와 가족의 해체가 들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감독 데뷔작부터 이후 이창동 영화의 핵심적인 특징이 상당 부분 보인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삶 뒤에 사회가 있습니다.
막동의 비극을 한 개인의 잘못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도시가 변하고 가족이 흩어지고 개인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과정이 함께 나타납니다.
이후 <박하사탕>, <버닝>, 그리고 <가능한 사랑>까지 이어지는 ‘개인과 사회’라는 질문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하사탕|이창동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다
두 번째 장편 <박하사탕>은 이창동 감독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김영호의 인생을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구조로 보여줍니다.
한 남자의 개인사가 한국 현대사와 겹쳐집니다.
칸국제영화제 공식 프로필에도 <박하사탕>이 2000년 감독주간에 초청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이창동 영화의 중요한 방식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사회문제를 설명하지 않고 그 사회를 살아온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소설가였던 이창동의 시선이 영화라는 매체와 본격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아시스|베니스가 이창동을 주목하다
2002년 <오아시스>는 이창동 감독의 국제적인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설경구와 문소리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사회에서 소외된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룹니다.
제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이창동은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문소리 역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창동은 국제영화제가 주목하는 한국의 대표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행보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감독이 갑자기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다
2003년 이창동은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됩니다.
영화를 만들던 감독이 정부 부처의 장관이 된 것입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매우 특이한 공백이 생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칸국제영화제 공식 자료에서 이창동 감독은 <밀양>에 대한 아이디어를 <오아시스> 이후인 2002년부터 생각했지만 문화관광부 장관직을 맡으면서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고 직접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다시 그 프로젝트로 돌아왔습니다.
즉 그의 경력은 단순히
소설가 → 영화감독
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소설가 → 영화인 → 영화감독 → 장관 → 다시 영화감독
이라는 매우 보기 드문 경로를 걷습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 선택한 영화가 ‘밀양’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공직을 마친 뒤 만든 첫 영화입니다.
거대한 정치영화도 아니고 정부나 권력을 직접 다룬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밀양>이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여성 신애가 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가고 또 다른 비극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상실과 고통, 종교, 용서와 구원입니다.
전도연은 이 작품으로 2007년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이창동 감독 자신이 장관을 지냈다는 이력을 모른 채 영화를 보면 <밀양>에서 정치인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한 사람의 고통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점이 이창동이라는 인물을 이해할 때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시|소설가였던 감독이 다시 ‘언어’를 바라보다
2010년 <시>는 이창동의 문학적 출발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윤정희가 연기하는 미자는 시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려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창동 감독은 질문합니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시>는 2010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이창동 감독은 각본상을 받았습니다.
칸 공식 자료에서 그가 영화와 시를 연결해 설명한 것도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시 8년을 기다린 ‘버닝’
<시> 이후 이창동 감독이 다음 장편영화를 내놓기까지 다시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8년 <버닝>입니다.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가 출연한 이 작품은 이전 영화보다 훨씬 미스터리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이창동의 오래된 관심사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경제적 계급의 차이.
청년의 분노.
그리고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불안입니다.
<버닝>은 2018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다시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서 자신의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8년, ‘가능한 사랑’
<버닝> 이후 다시 8년이 흘렀습니다.
2026년 이창동 감독은 <가능한 사랑>으로 돌아왔습니다.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주연을 맡았고 상영시간은 164분입니다.
이번 작품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습니다.
영화에는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이라는 두 부부가 등장합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네 사람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만나면서 각자의 삶과 욕망을 마주합니다.
왜 이창동은 영화를 이렇게 오래 기다렸다 만들까?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옵니다.
작품 수가 많지 않습니다.
약 30년에 걸쳐 연출한 장편영화가 <가능한 사랑>까지 7편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작품 사이의 간격이 매우 깁니다.
| 작품 | 연도 | 다음 장편까지 |
|---|---|---|
| 초록물고기 | 1997 | 약 3년 |
| 박하사탕 | 2000 | 약 2년 |
| 오아시스 | 2002 | 약 5년 |
| 밀양 | 2007 | 약 3년 |
| 시 | 2010 | 약 8년 |
| 버닝 | 2018 | 약 8년 |
| 가능한 사랑 | 2026 | - |
<가능한 사랑>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공식 설명을 보면 그 이유를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그 영화가 자신에게, 관객에게, 그리고 영화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신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가능한 사랑>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작품 수가 적은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왜 이 영화를 지금 만들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감독.
이창동의 필모그래피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창동의 인생을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보면
| 시기 | 이창동의 변화 |
|---|---|
| 1983 | 소설가로 데뷔 |
| 1990년대 | 영화 각본·조감독으로 영화계 진입 |
| 1997 | <초록물고기> 장편 감독 데뷔 |
| 2000 | <박하사탕> |
| 2002 | <오아시스>·베니스 감독상 |
| 2003 | 문화관광부 장관 취임 |
| 2007 | <밀양>으로 감독 복귀·전도연 칸 여우주연상 |
| 2010 | <시>·칸 각본상 |
| 2018 | <버닝>·칸 경쟁부문 |
| 2026 | <가능한 사랑>·베니스 경쟁부문 |
그렇다면 무엇이 이창동을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들었을까?
국제영화제 수상 기록만으로 설명하면 쉽습니다.
베니스 감독상, 칸 각본상, 전도연의 칸 여우주연상, 문소리의 베니스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 등 그의 영화 주변에는 굵직한 국제영화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만으로 이창동 영화의 위치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저는 그의 경력을 돌아보면서 네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건보다 사람의 내면을 오래 바라봅니다.
②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
개인의 상처 뒤에 역사·계급·산업화·노동 같은 사회적 문제가 있습니다.
③ 쉽게 답하지 않는 태도
관객에게 누가 옳은지 설명하기보다 판단을 넘깁니다.
④ 영화를 서두르지 않는 방식
왜 지금 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먼저입니다.
장관 경험이 그의 영화를 바꿨을까?
이 질문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창동 감독이 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이후 영화가 이렇게 변했다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말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장관 재임 때문에 <밀양> 작업을 잠시 중단했고, 공직을 떠난 뒤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한 명의 예술가가 국가의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행정의 중심을 경험한 뒤 다시 창작자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독특합니다.
그래서 이창동의 경력에는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합니다.
그리고
사회와 문화의 구조를 훨씬 넓은 위치에서 바라본 공직자의 경험
두 경험이 그의 작품에 정확히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결국 작품을 통해 각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소설가에서 시작해 결국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이창동 감독의 경력을 처음부터 다시 보면 재미있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소설을 썼습니다.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정부에서 문화정책을 담당했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긴 여정에서 그의 작품이 계속 바라본 것은 거대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평범하거나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초록물고기>의 막동.
<박하사탕>의 영호.
<오아시스>의 종두와 공주.
<밀양>의 신애.
<시>의 미자.
<버닝>의 종수.
그리고 <가능한 사랑>의 해고 노동자 호석과 아내 미옥.
이창동의 위치는 계속 바뀌었지만 그의 카메라는 계속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26년 ‘가능한 사랑’에서 다시 만나는 이창동
그래서 <가능한 사랑>은 단순한 ‘8년 만의 신작’ 이상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감독의 글에서 이창동은 대규모 해고와 파업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을 접한 뒤 영화로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실제 노동자들의 고통을 극영화로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지 고민했습니다.
이 대목이 상당히 이창동답습니다.
사회문제를 발견했다고 바로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들의 고통을 영화로 만들어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먼저 던진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질문은 노동과 자본을 넘어 자유와 욕망, 그리고 사랑에 관한 영화로 발전했습니다.
FAQ
네. 칸국제영화제 공식 프로필에 따르면 1983년 소설가로 데뷔한 뒤 영화계에 들어갔습니다.
네. 2003년 대한민국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됐으며 공직에서 물러난 뒤 다시 영화감독으로 돌아왔습니다.
<밀양>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 이후부터 작품을 구상했지만 장관직을 맡으면서 작업을 중단했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다시 제작했습니다.
2026년 <가능한 사랑>까지 총 7편입니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가능한 사랑>입니다.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작품입니다.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출연하며 2026년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습니다.
마무리|이창동의 직업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질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창동의 인생을 직업만으로 설명하면 상당히 극적입니다.
교사.
소설가.
각본가.
영화감독.
문화관광부 장관.
그리고 다시 영화감독.
하지만 작품을 따라가 보면 오히려 일관성이 보입니다.
그가 계속 바라본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에 상처받은 사람,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 사랑받고 싶은 사람, 용서하고 싶지만 용서할 수 없는 사람,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그리고 2026년에는 해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다시 바라봅니다.
<가능한 사랑>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공식 설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그 영화가 자신과 관객, 영화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확신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입니다.
어쩌면 이 한 문장이 왜 이창동이 30년 동안 장편영화를 단 7편만 만들었으면서도 세계 영화계에서 중요한 감독으로 남아 있는지를 설명해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왜 그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먼저 묻는 감독.
소설가였던 이창동이 영화감독이 되고, 장관을 거쳐 다시 영화로 돌아온 긴 여정의 끝에서 2026년 다시 질문합니다.
“이런 세상에서도 사랑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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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의미와 작품 간 연결에 관한 일부 내용은 공식 자료와 작품 내용을 토대로 작성자가 해석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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